2020. 12. 28. 13:28ㆍ수필
남상선/ 수필가
설날 엄마는 5살 귀염둥이 꼬마가 할아버지께 세배를 드리도록 했다. 세배를 받은 할아버지는 인형 같은 손녀가 귀엽고 기특해서 귀에 걸린 입으로 너털웃음만 흘리고 계셨다. 순간 앙증맞은 꼬마의 손엔 파란 배춧잎 두 장이 쥐어지게 되었다. 세뱃돈을 받은 꼬마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배춧잎 두 장에 어쩔 줄 모르며 좋아했다. 그걸 본 엄마가 꼬마한태 하는 말이 세뱃돈 받았으면
“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해야지, 하며 일장 훈시로‘ 감사하며 사는 삶 ’을 꼬마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이와 같이‘감사하며 사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사람 모습이 각양각색이듯이 말을 하고 사는 우리의 언어생활 모습도 가지가지다.
어떤 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할 일에도 감사하다는 얘기는커녕 엉뚱한 너스레만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또 감사함이나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해야 할 일인데도 감사함이나 고마움의 느낌이 있는지 없는지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에 따라서는 궂은 일, 좋은 일 가리지 않고 모두를 비판이나 투덜대는 불평으로, 맥질하는 사람도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화두의 어린 꼬마처럼 가르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처지 모든 조건이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전천후로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온갖 악조건의 상황도‘감사할 일’로, 성공의 판도로 바꿔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타산지석의 본보기인 ‘마쓰시다 고모스케’의 이야기를 모르는 체할 수가 없다.
‘마쓰시다 고모스케’는 일본의 세계적인 부호이자 '내쇼날’ 상표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흔 넷의 나이로 운명할 때까지 산하 570개 기업에 종업원 13만 명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였다.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 점포의 점원으로 일하던 중 그는 85년이 지난 후 일본 굴지의 기업의 총수가 되었는데, 어느 날 한 직원이 마쓰시다 회장에게 물었다.
“ 회장님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큰 성공을 하셨습니까? ”
마쓰시다 회장은 자신이 세 가지 하늘의 큰 은혜를 입고 태어났다고 대답했다.
그 세 가지 큰 은혜란,
첫 번째 가난한 것 , 두 번째 허약한 것, 세 번째 못 배운 것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직원이
“ 이 세상의 불행을 모두 갖고 태어나셨는데도 오히려 그것을 하늘의 은혜라 고 하시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하자
마쓰시다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네. 또 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도 일찍이 깨달아 몸을 아끼고 건강에 힘써 지금 90살이 넘었어도 30대의 건강으로 겨울철 냉 수 마찰을 한다네. 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기 때문에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는데 노력하여 많은 지식과 상식을 얻었다네.
이런 불행한 환경은 나를 이만큼 성장시키기 위해 하늘이 준 시련이라 생각 하여 감사하고 살았네.”
내쇼날의 마쓰시다 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과 시련을 오히려 하늘이 준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좌절하고 절망에 빠질 만한 악조건 속에서도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자기를 훈련하고 노력하여 누구보다 값지고 훌륭한 성공을 했다. 마쓰시다 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악조건을 남의 탓이나 원망으로 돌리지 않고 하늘이 준 은혜로 생각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남의 탓으로 돌릴 법도 한데, 마쓰시다 회장은 남의 탓이 아니라, 덕분이라는 생각으로 평생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악조건을 성공으로 이끌어냈다. 참으로 ‘감사하며 사는 삶’ 을 생활신조로 삶으로써 ‘감사할 일’ 을 창조한 인간 승리자가 된 것이다.
지금쯤은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가슴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도 자성에 빠져 볼 일이다.
너와 나는 삶의 맥박이 자랑스럽게 뛰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 볼 일이다.
나도 마쓰시다 회장처럼 감사하는 삶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감사하는 삶에는 무디면서 불평으로 맥질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감사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무감각 가슴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와 나 모두의 삶이 원망과 미움으로 칠갑되어 감사함이 퇴색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의 삶이 ‘감사하는 삶’으로 극복되어 ‘감사할 일’이 되게 하소서.
너와 내가 감사하는 삶으로 하나 되어 은원(恩怨)이 따로 없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모두 ‘감사하는 삶’으로, 온갖 원망과 어려운 일이 ‘감사할 일’로 바뀌게 하소서.
보미 꼬마도, 철희 할아버지도,‘ 감사하며 사는 삶엔 감사할 일이 생긴다는 것 ’을‘ 부메랑 ’으로 알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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